불교 승려로 활동할 당시 법명 '혜문(慧門)'은
'친일파 재산 위헌 법률 심판청구'를 시작으로
2007년 '조선왕실의궤'환수운동 등 문화재 반환 운동가이자
동양사상과 문화재 관련 서적을 출판해 글을 쓰는 작가로서,
또 불교 미술 공예가로서 《금은제라마탑형 사리구 재현품》으로
불교미술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청리움에 방문한 '혜문(慧門)'과의 인연으로
금솥(金鼎)을 제작하여 방문하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에 안치해놨는데,
이에 관한 그의 제작기를 소개하고자합니다.
금솥 제작기
혜문
금솥(金鼎)은 본래 도교에서 불로불사약을 연단(鍊丹)하기 위한 솥을 말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뒤, 서복(徐福)에게 동해 봉래, 영주, 방장산에 사는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을 내렸으니, 봉래산은 동해 금강산이요, 영주산은 제주 한라산, 방장산은 남원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곳곳에 서복이 다녀갔다는 흔적과 전설이 남아 있으니 제주도 서귀포는 서복이 다녀간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고, 남해 금산에는 서복이 직접 새겼다는 금석문이 남아 있기도 하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해오면 불사약을 다리기 위해 순금으로 만든 금솥을 제작하고자 했다. 불로불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솥 자체도 영원하고 변치 않는 재료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솥은 비중이 높아서 순금으로 금솥을 만드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결국 서복은 불로초를 구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도망가버렸고, 진시황 역시 금솥 제작에 실패한 채 49세 에 진시황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았다. 이 사건으로 금솥은 연단(鍊丹)의 대명사가 되었다.
금솥은 그 뒤 불사약을 만드는 솥이란 뜻에서 연단술을 의미하게 되었으니, 도교경전에 자주 인용된 “금솥에 용호가 서렸으니 삼년동안 신단을 기른다(金鼎蟠龍虎,三年養神丹)”란 구절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세월이 흐르며 금솥은 불사약을 만드는 연금술에서 수련을 통해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꿈꾸는 신선술로 변해 갔다, 진시황의 꿈을 자세히 되짚어보면 우리나라가 불로초가 살고 있는 신령한 땅 이라는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현대에 있어서 불사약이란 무엇일까? 불사약이란 죽지 않는 약이니 곧 ‘밥’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령한 땅에서 자란 세계에서 가장 맛좋은 우리 쌀로 금솥에 밥을 지어 ‘금밥’을 만들어 중생에게 회향한다면 곧 불로불사약이 아닐까?
이에 진시황이 이루지 못한 불로불사 꿈을 지금 이 땅에서 형상화해 보고자 순금으로 금솥을 제작하고 금밥을 지어 사람들고 함께 공양하며, 여기가 불로초가 살고 있는 신령한 땅임을 상기시키 고자 한다. 금강산은 화엄경에 담무갈 보살이 1만2천 권속을 데리고 불법을 상주설법하는 땅이라고 하고, 아미타불은 ‘금색광명’으로 빛나신다고 했으니 곧 부처의 가르침이요, 고유의 풍류사상이었을 것이다. 기이하게도 인연이 도래하여 오하(梧河)와 뜻이 통하기에 가평 청리움에 진시황도 만들지 못 한 금솥을 제작하여 안치하고 이처럼 연유를 밝힌다.
壬寅小雪 金鼎一基 供養諸佛
一心發願 四大剛健 六根淸淨 得般若智 具顯淨土
證明法師 慧門 施主 金祥哲 焚香
임인년 소설(小雪)에 금솥 하나를 불보살게 공양하고 일심으로 발원하나이다.
사대강건하고 육근청정하여 반야의 지혜를 얻어
세상에 정토를 구현케 하소서.
증명 법사 혜문, 시주 오하 함께 합장하고 향 사루옵니다.
혜문